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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성

공부를 한다는 것에 대한 의미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목표를 잡지 않는 아들을 보며 다시 그 나이로 돌아가 다시 한번 그 삶을 산다. 다만 달라진 게 있다면 인생 2회 차로 현재의 기억도 가진 채 시뮬레이션해본다는 점이 다르다. 아이에게 해줄 말을 미리 준비해 둔다. 불쑥 질문이 들어올 때 무심한 듯 툭 준비해 둔 말을 던져주면 의외로 효과가 있었다. 그러면서 계속 곱씹는다. 왜? 나는 왜 공부를 했을까? 학생이었으니까. 엄마는 공부를 하고 싶었는데도 그리고 매우 잘했는데도 형편이 안 돼서 포기했는데 나는 어려워도 부모님이 지원해주고 있으니까 공부를 잘하면 적어도 학교에서 부당한 대우를 덜 받으니까 또 지금 내 형편이나 처지에 비해 더 대우를 해주니까 공부를 잘하면 좋은 직장에 들어가고 남보다 우위에서 출발할 수 있으니까 실력이 있으.. 더보기
나이 듦과 주체성에 대하여 사람이 태어나서 자기 의지대로 무엇을 해본다는 것은 생각보다 아주 큰 의미를 갖는다. 계속 주체성을 확대해가는 삶을 살아가다가 그 주체권을 빼앗기면 엄청난 상실감을 느낄 것 같다. 사춘기는 어찌 보면 주체성의 이동 과정 가운데 오는 균형점을 찾는 과정이다. 아들 TV의 김민준 소장은 부모로부터 '경영권 승계'라고 표현했다. 그렇게 저렇게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주체적인 인간으로 살아가다가 나이가 들면 몸이 허락하는 한계 내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타협점을 찾아 간다. 그러나 질병으로 인해 더 이상 기초적인 일을 처리하지 못하게 되면 그때는 주체성이라는 의미가 정말 제한된다. 겪어보지 않으면 절대 이해할 수 없을 상실감일 것이다. 결코 이해하는 척 하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이미 자신의 세계안에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