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김춘수의 「꽃」 전문
학창시절 책을 거의 읽지 않았다.
국어 교과서에 나온 짧은 인용문이 내가 읽은 좋은 책의 거의 전부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국어 교과서에 실린 글들이 좋은 글이었다는 점? ^^
요즘 자꾸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가 떠오른다.
그때는 "도대체 뭐라는 거야"가 솔직한 느낌이었다.
시험을 보기위해 시가 의미하는 바를 그냥 받아들였던 것 같다.
나는 딱히 동의하지 않았지만.
그런데 요즘 자꾸 시가 떠오르면서 대단한시였네...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 얼마나 그 존재를 알아봐주기를 원하는지
수많은 꽃들 중에 이름이 불리는 '꽃'이 되고 싶어하는지
남녀관계에도 적용되고
직장에서 사회생활에서도 적용되고
그냥 존재 자체에 적용되기도 한다.
아이들 동화책에 '너는 특별하단다'라는 책이 있다.
사회 규범에 잘 짜인 누군가이기 때문이 아니라
누군가가 원하는 모습이어서가 아니라
네 존재자체로 너는 특별하단다 라고 말해준다.
맞다. 우리 모두는 특별하다.
존재 자체가 소중하고 고유해서 특별하다.
모두가 특별하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우리 존재는 누군가보다 상대적으로 우월하거나 특별하지 않다.
당연하게 나에게 주어져야하는 권리라는 것은 없다.
서로를 불러주며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특별하게 만들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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