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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am I ?

아버지라는 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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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라는 호칭은
존경. 예의가 담긴 단어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내게는 나의 아빠를 거리 두게  만드는 단어다.
그래서 아주 잠깐 아버지 어머니라 불러보고
다시 엄마아빠로 돌아갔다.

아빠는 어렸을 적 기자를 업으로 하셨다.
그래서 아빠가 기록을 좋아하시는 분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꼭 그랬던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예술 쪽에 더 관심이 있으셨던 것 같다.
집에 남아있던 글씨. 그림.
그리고 친구라 부르던 그분들이
지역의 문예가 셨었다.
이름은 많이 날리지 못했지만.

아빠는 마지막에 다시 암 진단을 받으셨다.
그해 봄 끄적인 일기장에
가족에게 늘 든든란 바위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 하셨다.
손주들에게 든든한 할아버지로 남고 싶어 하셨다.

십 대 시절 아빠는 사업을 시작하셨다.
돈 이야기는 입 밖으로 꺼내시지 않으셔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얼마나 번창했는지
나는 거의 알지 못한다.
그저 엄마의 표정과 식단에서 오는 여유로 짐작할 뿐

그러나 전반적으로 넉넉함보다 쪼들림이 많았다.
그래서 아빠는 사업에는 소질이 없다 생각해 왔다.
다 커서 아빠라는 산이 조금 무너져 보였 나보다.

아빠에게 나는 늘 모자란 딸이었다.
자랑거리가 아니었다.
나도 좋은 옷과 장갑도 사드리고
잘 나가는 자랑스러운 딸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움츠러드는 헛똑똑이 딸이었다.

생전에 뭐 하나 제대로 해드리지 못했다.
시간은 내줄 수 있었으나
음식에도 재주가 없고
돈 버는 재주도 없어서
그게 늘 마음 한편에 짐으로 남아있다.

아빠를 떠나보내고 첫 설을 맞이했다.
엄마는 아주 오래오래
고통스러운 떠나보냄의 시간이 있었음에도
막상 그날은 기둥하나가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아빠는 나와 큰 접점이 없었다고 생각해 왔다.
그래서 덤덤하리라 막연하게 생각했는데

그러나 미처 깨닫지 못했을 뿐
아빠가 엄마를 지키는 그 긴 시간 동안
아빠가 엄마였고 또 아빠였으며
마지막까지 존재자체가 언덕이자 바위였다.

아빠는 내게 마지막 그날까지
부끄럽지 않은 인생이었다.
오히려 떠나보내고 나니 더 느껴진다.

마지막 반년 간 형제들을 하나로 뭉치게 하셨고
그 어느 때보다 오랜 시간을 함께했다.
그래서 그런지
병원 베란다 난간에서 마을을 바라보시던
그 모습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내 손에 붙잡던 그 손의 촉감이 기억에 남는다.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아빠는 마지막까지 야구 경기를 보셨다.
그 해 그 팀은 우승을 했다.
하지만 우승의 순간은 함께하지 못하셨다.

올해 설에는 눈이 참 많이 왔다.
엄마 아빠 산소는
먼저 도착한 언니덕에 깨끗하게 눈이 치워져 있었다.
주위는 온동 밟지 않은 눈 천지인데 묘지만 깨끗했다.

아빠 우리 잘 살고 있어요
형제끼리 더 아끼며 살게요.
용기 내어 살게요
당당하게 힘차게
한 발씩 앞으로 내딛으면서
속으로 나지막하게 말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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